작성일 : 2011-12-05 18:46
:: 일본에 당하는 이유: 실수와 패배인정에 대한 방어기제,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

 글쓴이 : 최재윤
조회 : 811
온 국민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한 동안 소진케 했던
 ‘일본의 독도인근 배타적 경제수역(EEZ) 수로측정’을 둘러싼
물리적 대처와 외교적 협상이 끝났다.

한국은 몇 개월 후 예정되었던 국제수로기구(IHO)에
한국식 해저지명 상정을 철회, 연기하는 대신
일본은 수로측량선 2척을 다시 원 위치로 복귀시켰다.
또한 일본은 한일간 배타적 경제수역(EEZ)협상 재개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한국 측 약속을 함께 부수적으로 챙겼다.

외교협상 결과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대성공으로 자축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역시 국민들의 평가와는 상반되게
 ‘단호한 정부 의지에 일 결국 물러섰다’는 긍정적 평가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중국의 언론에 비친 논조는
우리 정부의 평가와는 상반되게도 ‘한국 완패’ 보도로 알려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독도 교섭 결과 일본에 유리 분석은 오류’라는
반박 글(4.23일)을 국정홍보처 <국정브리핑>에 올렸다.

한일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양국이 모두 ‘윈-윈’인 가장 이상적인 외교협상 결과를 이끌어 낸 셈이다.
양국의 협상대표들에게 갈채를 보내야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텐데
일반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운 이유는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이번 사태의 해결과정 역시, 해양수산부 장관 경질까지 이끌었던
지난 98년과 99년의 ‘한일어업협정’, ‘신 한일어업협정’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한일어업협정 준비과정때도 일본 관료들은 우리와는 달리
어민들의 실태파악을 위해 협상을 준비한 고위관리들이
어장을 수개월동안 직접 방문 조사했다.
또한 당시에도 일본은 우리 해양수산부와는 달리
외교부서와의 국제법상 검토까지치밀하게 준비했던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이번에도 일본은 이와 동일한 치밀한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자국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졌다. 이번 분쟁의 당사자인 해상보안청은
2005년 12월부터 외무성, 관방성 등 관계부처와 '국제법 검토'까지
모두 마친 후 분쟁을 야기시킨 것으로 보도되었다.   

반면, 우리측에서 보여준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독도사태에서는 기존의 소위 ‘조용한 외교방식’에 대한 회의론을
외교수장이 스스로 밝혔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까지 나서 일본행위를 '국가주권에 대한 도발 행위'로
직접 규탄했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그것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당연히 ‘일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이번 사태로 잃은 것이 전혀 없다.
단지 전리품만을 챙겼을 따름이다.

일본은 이번 사태를 야기 시키기 이전에
이미 ‘국제수로기구(IHO)’에 울릉, 독도 인근 해저분지에 대한
 ‘일본식 이름’을 등재해놓은 상태였다.
이를 뒤늦게 알게 든 한국 측이 올 해 '한국식 이름 등재’를
신청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일본 측 입장에서는 ‘울릉, 독도 인근 해저에 대한 수로 측정’을
굳이 지금 이 시기에 긴급하게 실시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단, 그것을 위해서는 한국 측이 정확한 수로를 명기한 상태로
‘한국식 이름’을 등재신청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일본 측은 인근해역의 수로 측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 측의 ‘한국식 지명 등재’만 저지하면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전략카드가
‘독도, 울릉도 인근 수로 측정 발표’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 두 척의 배를 파견하겠다는 사실통보만으로도
한국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 것이며,
이를 빌미로 협상을 제의하여 양측이 하나씩 서로 양보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은 이를 마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협상의 마지막 양보카드인 양 사용’한 것이다.

또한 한국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이 의도하고 있던
 ‘국제수로기구 등재 연기 가능성’을 협상의 최고책임자가
언론에 흘리는 '치명적인 우(愚)'까지 범했다.

일본은 98년과 99년의 한일간 어업협정과 마찬가지로 실리를 챙겼다.

하지만 한국은 그 때와 동일하게 이번에도 명분만 얻었을 뿐이다.
일본이 수로측량을 강행하지 않는 대신,
우리는 ‘국제수로기구(IHO) 등재'를 연기, 포기하였다.
또한 거기에다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상을 다시 시작하기로 약속하였다.

잃은 것 밖에 없는 외교성과이다.

우리가 유일하게 얻은 결과는 ‘물리적 충돌을 피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역시 외교부서의 자체평가는
‘한국 승리’로 표현되고 있으니 이를 어찌 해석하여야 할 것인가?

물론 외교담당자와 부서의 승진, 평가를 위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당연히 요청되겠지만,
국가적 대의 측면에서도 용인될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실리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외교협상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
긍정적으로 자찬 내지 대성공인양 발표하는 구습을 여전히 되풀이 하고 있다.

이는 어느 역대정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국민들에게 긍정적 관점과 꿈을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이런 문제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회피성향이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계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문제의 발생원인을 어떤 이들은
98년, 99년에 있었던 어업협정에서의 독도기점 EEZ포기와
울릉도 기점 EEZ채택에서 찾는다.

물론 문제의 근원은 ‘일본의 영토확장 야심 정책’에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본의 야심에 빌미를 제공한 원인은
역대 외무부가 고수해 온 ‘조용한 외교정책’과
‘98년, 99년의 한일 어업협정’에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용한 외교정책’은 누가 주창하였는지는 모르나,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 시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대의명분을 제외하고는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일견 상당한 논리를 갖는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사례만 보아도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법’은 단지 '강자만의 자기 합리화 논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예를 보라!
전쟁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국제법상으로 미국을 침략자라고 규정하는가?
단지 승자의 자기 합리화만 존재할 따름이다.

정작 대의명분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상황을 빌미로 합리화’하며,
정작 ‘실리’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국제기준 혹은 선진국 기준’ 운운하며
‘상황 논리’에 집착하다 모든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그 대표적 사례중 하나를 우리는 이미 황우석교수와 새튼교수의 ‘특허권 획득과정과
한미 양측의 상반된 해당자 처벌과정
(새튼은 황교수와 유사연구 내용을 특허출원하였다. 또한 새튼은
초기 미국측의 '교수직 박탈' 발표와는 달리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거금의 연구자금 지원을 받았다) 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가.   

독도문제는 일시적으로 다시 말없는 파도물결마냥 수면 밑에 가라앉았다.
아마도 빠르면, 몇 개월 후 혹은 내년쯤 다시 우리는
독도의 EEZ 문제로  ‘국가적 흥분 상태’를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왜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쯤이 되어서야 우리도 일본처럼 상대의 의표를 찌르며,
실리를 챙기는 지혜를 갖추게 될 것인가?   
     
문제의 본질은 그냥 덮은 채, 자신의 임기동안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는 관료들의 '무사안일주의'와 '근시안적 외교철학',
그리고 승진에 방해가 될 실수와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방어기제(防禦基劑)'의 발달이 지속되는 한,
한국외교의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작성일: 2006.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