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5 18:32
:: [혁신 시리즈] 변화와 혁신의 또 다른 조건 : 인고의 시간, 그리고 끊임없는 폐기학습(Unlearning) ::

 글쓴이 : 최재윤
조회 : 768
'왕의 남자'는 작년 12월29일 개봉된 이래 현재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한국 영화사상 세 번째라고 한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조만간 아내와 함께 상영관을 찾을 생각이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이 영화에 관심을 동하게 만든 것은,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로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유명세 때문은 아니다.

이구동성으로 영화를 관람한 이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영화'란 이유 때문도 아니며,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이 영화를 연결시켜 희극화시킨
작금의 정치인들 때문은 더 더욱 아니다.

단 하나의 이유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이준익씨에 대한 관심에서이다.

그가 인터뷰한 기사를
한 일간신문(동아일보 2006.2.6자)에서 읽고 부터이다.

그는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1986년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직업전환을 했다고 한다.

전환의 이유는, 단 하나 '월급이 더 많을 것 같아서' 였다나.
그 후, 1993년 영화사 '씨네월드'를 창업하고
영화 '키드 갑'으로 감독 데뷔했지만 실패한다.

1994년 '성스러운 피'를 시작으로
'메멘토' '택시' '블레이드2' 등 외화 수입으로 돈을 번다.
하지만 이후 거듭된 실패로 70억의 빚을 졌다.

실패로 인한 거액의 빚에도 불구하고,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등의 제작,
2003년 사극 코미디 '황산벌'로 다시 감독의 자리에 앉는다.

이 번에 흥행을 기록한 '왕의 남자'는
연출료 7500만원을 받고 그가 만든 세 번째 영화이다.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와 같이 대박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도양의 한 무인도에 '도도'란 새가 살았대.
근데 그 새는 섬에 먹을 게 워낙 많고 천적도 없다 보니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다는군.
날개가 퇴화해 못 날게 된거야.
그러다가 포루투갈 선원들이 섬에 왔을 때 다 잡아먹혔어.
이게 진리야.

진화란 고난과 역경이 전제가 되어야만 하지.
내가 잘나가면서 '롤루랄라'했으면
이런 영화 절대 못 만들어..................."

이준익 감독이 말한바와 같이,
'진화란 고난과 역경이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라는 말이나,
'왕의 남자'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지난날의 처절한 실패 경험'이라는 표현은 매우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 말은,
앞으로의 작업일정과 차기작품에 대한 그의 발언이다.

벌써 초반작업에 들어간 그의 차기 작품은,
'라디오 스타'란 제목의 영화이다.
스토리는, 이젠 시대적으로 한물간 락 스타가 시골에 내려가
라디오 DJ를 하면서 겪게되는 휴먼 코미디이다.
'왕의 남자'처럼 이번도 역시 '비주류'들의 이야기이다.

기자가 그에게 "'1000만 관객' 대기록을 세우는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폼'이 안 난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단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멀리 가야 하는 사람이 예술가야.
자기 거 자꾸 해먹고 또 해먹고 사는 인간은 예술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매너니즘이지.
'왕의 남자' 만든 내가 '키드 갑'이나 '황산벌'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잖아?

'키드 갑'은 '일준익'이,
'황산벌'은 '이준익'이,
'왕의 남자'는 '삼준익'이 만든 거라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작업은 '왕의 남자'를 완전히 버리는 거야.
'사준익이 되는 거지..........."

작성일: 2006.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