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3 17:49
:: 다양함 속에 감추어진 몰개성 ::

 글쓴이 : 최재윤
조회 : 841
“한국 백화점들은 상품이든, 서비스든 너나 할 것 없이 똑 같은 것 같아요. 미국을 보더라도 오래 생존하는 백화점들은 자기만의 컨셉트와 고객을 가지고 있거든요”(한경2005.6.29)

한국 백화점에서 새로운 방안을 배워오라는 네즈 고이치 사장의 권유로 올해 6월26일 도부 백화점 임직원 15명과 함께 한국을 방한, 백화점, 할인점, 쇼핑몰 등을 둘러 본 사세 아쓰시 영업정책실장(이사)의 충고이다.

“한국의 블로그는 온통‘퍼온 글(scrap)'로 가득하다. 미국의 블로거(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가 보기엔 개성이 없어 보인다.”(동아2005.7.22)  현재 SK커뮤니케이션즈가 준비하고 있는, 미국‘싸이월드’서비스 컨설팅을 맡고 있는'블로그의 아버지’마크 캔터 씨의 발언이다.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한국 블로거들과‘블로거의 저녁(Blogger's Dinner)’행사를 가졌다. 싸이월드는 ‘미니홈피’서비스로 국내 가입자가 1300만 명을 넘는 대 성공을 거두고, 미국 진출을 준비중이다.
미니홈피도 크게 보면 일종의 블로그. 그러나 싸이월드의 인기 뒤에는 '1촌 맺기’라는 독특한 서비스가 있다. 캔터는'1촌 맺기'를 낮설어 했다. 그는 미국에는 이런 식의 관계 맺기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1촌의 사진이나 글을 그대로 긁어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왜 올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캔터는 “미국의 블로거들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들기 때문에 블로그에도 유익한 정보가 넘쳐난다. 블로거들은 대부분 특정 분야의 마니아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미니홈피는 화려한 멀티미디어가 장점. 어느 미니홈피를 방문해도 사진과 동영상,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미국의 블로그엔 이런 화려함이 없다. 미국의 블로그는 단조롭다는 흠을 갖는다.

위의 두 글은 비록 그 영역과 주장하는 사람은 다르지만 동일한 특성을 지적하고 있다.

자기만의 컨셉과 고객을 갖지 못한 채 획일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갖고 있는‘국내 백화점’, 자기만의 진지한 성찰과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퍼온 글(scrap)'로 가득한 개성 없는 '블로그’, 즉 '몰 개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첫 번째 지적은, 한국 백화점을 배우기 위한 백화점 방문단을 이끌고 내한한 일본 유수의 도부백화점 영업정책실장(이사)의 충고라는 점에서,
두 번째 지적은, SK커뮤니케이션즈의 미국 진출 서비스를 컨설팅하고 있는‘블로그 미국 최고 전문가’중 한 사람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몰 개성', 그리고 '획일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공감대를 갖는다.

정말 이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백화점과 블로그는 자기철학 이 결여된 '몰 개성'과 '획일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일까?

국내 백화점을 쇼핑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백화점 외장부터 내부 매장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매우 변화무쌍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일본의 전문가는 내 생각과는 상반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언뜻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오래 전 읽은, 그래서 이제는 제목과 신문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기자의 작은 칼럼내용이었다. 그때 읽은 기억을 되살리면, 대략 다음의 내용이었다.
한 기자가 오래 전에 산 물건의 A/S를 받을 일이 생겨 외국의 백화점 매장을 다시 찾게 되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매장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할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백화점 내부에 들어서자 거의 1년 이상이 지났건만, 매장과 통로 그리고 디스플레이, 낡은 계단모습 등이 그때의 기억을 회상시킬 만큼이나 동일하게 전혀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나 모든 것이 그대로였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 매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 백화점의 잦은 내부 인테리어나 매장 변경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 기자에게, 일년 전과 내부 인테리어나 매장 배치, 낡은 시설부분 조차 그대로인 백화점 모습은 그 백화점이 갖고 있는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1주일이 다르게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 백화점의 잦은 인테리어 및 내부 변경과는 너무나 상이한 세계 일류 백화점의 모습 속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하였다.

얼마 뒤 다시 방문하여도 이전 매장이나 상품을 다시 발견하기 어려운 국내 백화점의 너무나 신속한 구조변화(?)와 그로 인한 역기능, 이와는 반대로 세계 최고의 백화점임에도 불구하고 내부구조나 인테리어는 전혀 변하지 않은 채 고객을 맞이하는 진정한 서비스와 제품력으로 경쟁하는 외국의 백화점을 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기자는 국내 백화점의 변화무쌍한 내부구조 변경 및 비싼 인테리어 비용의 최종 지불자가 누구인지(?)를 지적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사실들을 감안한다면, 국내 백화점은 비록 매장 디스플레이, 내부 인테리어 등은 최신 유행을 앞서 시시각각 새롭게 변화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자기철학에 근거한 진정한 변화'는 결여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자기철학과 이에 근거한 변화'가 결여되다보니, 이를 보다 용이한 외부적 치장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외부에 드러나는 개성들은 다양하며 화려했지만, 그것이 일본의 전문가들에게는 눈속임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국내 백화점들이 판박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한국 백화점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를 들여다보면 원인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백화점은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구입해 판매하는 직매입 비율이 미국, 영국 등의 백화점에 비해 낮습니다.
대신 재고 부담은 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지고 백화점은 20~40%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점포(업계에서는 이를 특정 매입이라고 하는데요)의 비중이 큽니다.

직매입 비중이 큰 미국, 영국의 백화점과 특정 매입 비중이 큰 일본의 백화점을 버무려 놓은 듯한 형태가 한국의 백화점이라는 것입니다.

특정 매입 의존도가 크다 보니 백화점끼리 차별화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백화점 3사에 입점한 브랜드가 대부분 비슷 비슷한 세일 품목이나 할인율도 비슷하게 되는 것이죠. 한 업체가 세일을 하면 다른 업체도 세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직매입을 하는 미국, 영국의 백화점들이 부담해야 할 재고를 털기 위해 시즌 끝 무렵에 파격 세일을 여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 영국의 백화점처럼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구매해 조달하려면 재고 부담 등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상품 조달 능력이 부족한 한국의 백화점이 특정 매입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점은 백화점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제품에 비슷한 행사를 벌이니까 특정 매장에 대한 로열티는 있어도 백화점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죠........작은 곰 인형 하나에도 백화점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고품격 백화점인 헤롯 백화점의 명성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영국 왕실의 물품을 공급할 정도의 엄격한 상품 선정 기준과 관리 능력이 고품격 백화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동아2003.11.13)

결국 국내 백화점들이 일본의 전문가 눈에 그만 그만하게 보였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차이'의 발생은,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능력'으로부터 연유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재확인인 셈이다.
블로그에 대한 미국 전문가의 지적 역시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진정한 자기 고민에 근거한 자기 지식의 결여'는 '퍼온 글과 사진, 화려한 동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양함 속에 감추어진 몰개성, 이는 비단 이 두 영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내재되어 있는 공통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根源)은 어디에 있을까?
다시 한 번 지극히 평범한 경구하나를 되새기게 되는 무더운 한 여름 밤이다.

"보이는 것의 변화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의 변화가 필요하다."

(2005. 7.24 북한산과 오봉을 맞이한 송추서재에서 최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