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3 17:41
:: [일상 칼럼] 현상인식(現象認識)의 사대주의(事大主意), 사고(思考)의 종속화(從屬化) ::

 글쓴이 : 최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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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칼럼] 현상인식(現象 認識)의 사대주의(事大主義), 사고(思考)의 종속화(從屬化)

                                                                 최재윤 (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 경영칼럼니스트)

노근리 학살사건,

1999년 9월의 마지막날, 국내 전 언론매체가 일제히 대서특필한 기사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지난 50년 7월25일 ~ 29일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주곡, 임계리 주민 5백여명을 피란시켜 주겠다고 인근 경부선 철로 밑 굴다리에 모아놓고 기총소사를 해 4백여명(어린이, 여성 포함)을 대량학살한 사건이다.

이것을 AP통신이 미 국방성의 비밀해제 문서를 뒤져 보도기사로 타전한 것을 국내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것이다. 그동안 감취어지고, 쉬쉬하던 진실이 이제라도 밝혀진 것이다.

더군다나 그 때 구사일생으로 생존했던 유가족들은 '그동안 군사정권 하에서는 노근리 사건을 거론하는 것조차 '반미행위'로 간주돼 입도 한번 열지 못해 한이 되었다'니 참으로 천만다행인 셈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유감인 것은, 왜 이제서야 노근리 사건이 수면위에 부상되었느냐?하는 점이다.

노근리 사건은 이미 5년 전 '한겨레 신문'과 '기독교 방송'이 특종기사로 취재, 보도한 바 있는 사건이다. 더

군다나 1, 2 년 전, 방송국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국내의 한 TV방송국이 다큐멘타리 르포 형식을 빌려,미 국방성 비밀문서, 증언자들의 증언, 당시 노근리 기차굴다리 총탄자국까지 치밀하게 취재하여 근 1시간에 걸쳐 방영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언론사가 특종으로 취재, 보도하였을 때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주목받지 못한 채 소멸되었다가 AP라는 외국 유명 통신사가 타전한 후에야 비로소 국내의 타 언론기관과 정부가 관심을 표명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커다란 사건이 우리의 언론기관에 의해서 오히려 더 상세하게, 증언자들의 증언과 현장발굴 모습까지 방영되었던 몇 년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소멸되었다가 그후 수년이 지난 오늘에야 각 언론기관에 대서 특필되며,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고은 시인,

늙고,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대학강단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원로시인, 국내에서는 모든 이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던 인생의 뒤안길에 '2000년 2월 하바드 대학에서의 객원교수 초빙'이란 사건으로 다시금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문단과 대학에서는 이젠 정년퇴임하였다는 이유로 이젠 한물간 문학가로 잊혀져가던 한 문학가에 대한 '진가'가 외국유명대학으로부터의 객원교수 초빙이 있은 뒤에야 다시금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고은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특집기사와 함께.


오마에 겐이치,

'영 이코노미스트'가 세계의 사상적 지도자 4인중 하나로 선정한 경영전략가이자 유명 경제평론가이다.

몇 해전 일본의 저명 출판사 쇼각칸(小學館)의 격주간 국제정보지 '사피오(SAPIO)'지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결코 일어설 수 없는 이유'(7.28)라는 제목으로 IMF 이후 한국의 경제해법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고언을 게제하면서 국내에 치열한 찬반 격론을 야기시켰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중심의 헤게모니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누리는 평온일 뿐이라고 말한다. 1998년 한국의 경제위기로 한국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하자 한국에 채무변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은 IMF 구제 시스템을 가동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원조는 한국에 돈을 빌려준 미국 은행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한국이 IMF에서 지원받은 자금은 미국은행 대출금을 갚는 데 쓰였으며, 그때 만약 미국 은행들이 한국 대출금을 떼였더라면 미국의 대출은행들은 상당히 위험한 지경까지 갔을 것이라는 것이 '한국 경제위기의 진상'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한국은 미국은행을 구하기 위해 IMF에 고개 숙이고 들어간 꼴이 되었으며, 이는 김대통령이 경제를 잘 안다고 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미국의 이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 투자은행들은 재벌해체 과정에서 돈을 벌었고 프랑스나 영국기업에 한국기업을 팔아 넘기는 과정에서도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재벌기업은 체력이 떨어져 자력갱생이 불가능해졌으며, 이제 IMF 권고에 따라 시장을 개방하는 일만 남아있으니 한국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정어린 충고와 질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기탄없이 털어놓은 충고를 한국인들이 왜곡되게 해석하는가 하면 또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데 섭섭하다"고 심중을 털어 놓았다(매경, 99.8.31). 그 후, 국내와 미국학자들에 의한 반박기사가 여러번 보도되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사주받아 그런 글을 실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표명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지금까지 수많은 미국과 유럽의 학자, 혹은 저명인사들에 의해서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한계가 제기되었을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지식인들이 던지는 비판이나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 이래도 되는 것일까?할 정도로 '무비판적 수용자세'를 보였던 우리 사회가 일본의 한 평론가에 대한 의견에는 당연히 반박할 입장에 서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역 돈부시 MIT교수까지 동원하여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마에 겐이치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왜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의 목소리와 생각에는 지나치리만큼 폐쇄적인 것일까?


왜 우리는 미국이나 서구의 언론이나 학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가치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우리자신의 문제와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그 가치를 인정함에 인색한 것일까? 또 상반되게 일본, 혹은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생각되는 특정국의 지성인들로부터 나오는 고언에는 편향된 안경을 쓴 채 귀를 닫는 것일까?


혹시 우리는 누구엔가 길들여져 있거나,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스스로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하기보다 너무나 쉽게 특정국가, 특정인에 의존한 손쉬운 해법을 찾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마에 겐이찌는 다음과 같은 값진 교훈을 던졌다.

"서울에 갈 때마다 한국의 진로에 대해 조언해 달라는 사람을 만난다. 미국에 일본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을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보려는 습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한국인중 많은 사람들이 답을 들으면(특히 선진국으로부터) 비판이나 신중한 고려없이 즉시 행동에 옮기고 마는 예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강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철저한 자기성찰'을 거쳐야 진짜 값진 답이 나온다."


이젠 '현상인식(現象認識)의 사대주의(事大主意)'가 빚어내는 '사고(思考)의 종속화(從屬化) 현상'을 경계해야 할 때이다.

칼럼 작성일: 200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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