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윤 | 2006·05·23 17:01 | HIT : 2,316 | VOTE : 494 |
오늘 자(2005.8.13) 조간 신문들에 공통적으로 실린 기사하나가 눈길을 끈다.
제목은 심 외교 "한미 이견없다"이다.
중국을 방문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2일 리자오싱 외교부장과 만나
제4차 6자회담 후 후속대책을 논의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평화적인 핵 이용권 문제에 관해 한미간에 이견이나 대립은 없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반 장관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에 대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언급에 대해,
"정 장관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국제 원자력 기구(IAEA) 사찰 등을
전제조건으로 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는 것이 신문기사 전문이다.
이 내용은 전날(2005. 8.12) 신문의 헤드카피를 장식한
'한미 "북, 핵 평화적 이용"이견' 제목 기사에 대한 후속기사로 보인다.
부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 차관보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깨뜨렸고,
핵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경수로를 포함한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도
보장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8월11일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겸 통일부 장관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는 북한이 마땅히 가져야 하며
경수로를 짓는 것은 일반적 권리로서, 북한의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과 생각이 다르다"며 한미간의 시각차를 인정했다.
결국 심 외교의 발언 기사는
전날 정 통일의 발언 기사에 대한 진화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짤막한 하루 간격의 두 기사를 바라보며,
아직도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思考)의 근시안(近視眼)'과
'사대주의적 사고패턴'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같아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견'이라 함은, '서로 다른 상대방간에 존재하는 생각과 견해 차이'를 말한다.
그리고 각자 갖는 견해는 자신의 경험, 지식에서 파생된
인식구조와 이해 득실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한 집안에서 오랜 풍상을 함께 해 온 부부간에도
사안에 따라 이견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각자 다른 지정학적 위치, 문화, 역사적 배경이 다른
국가간에는 특정사안마다 각기 다른 기본적 인식구조와
철저한 자국우선의 실리적 이익 잣대에 근거한 득실비교 등이 얼마나 고려되겠는가?
특히나 국가 주권과 인명에 직접적 상관을 갖는
핵과 관련해서는 더 더욱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한국과 미국이 갖는 입장과 현실은 매우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이 6.25전쟁을 통해 피를 나눈 '동맹 관계'라 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전쟁억지 내지 전쟁수행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이 핵 억지를 위한 한반도 일부 특정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한적 폭격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의 직접적 당사자가 되며,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면서까지
한국의 이익을 우선시할리 만무하며,
우리 또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기위해
우리의 생존권까지 희생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미 미국 측 대표인 힐 차관보는, 8월4일 오전
'핵 협의는 미국의 국익과 일치돼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와같이 한미간에 처한 입장이 다를찐대,
핵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한미간 이견이 존재치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양국 관계에 문제가 존재한다는 징표가 아니겠는가?
우리에겐 그것이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이든, 자주국방 추진이든, 핵 문제이든
모든 현안에 있어 한미간 이견의 존재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각자 자국 이익을 우선시 하는 냉엄한 현대 국제사회의
지극히 당연한 현실임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회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되는 많은 세월의 흐름이 요구되어지는 걸까?
문제가 터질 적마다, 한 미간 이견의 존재는 큰일날 일이며
마치 양 국간에는 모든 사안에 한 견해만이 존재해야하는 양
대서특필하는 국내 일간지와 이를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드는
많은 정치인들의 야단법석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한국 또한 미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양국간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 이견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견해와 주장의 관철은 당연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한미간의 '이견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국익에 가장 최적인 의사결정과 대안'을 고민하며,
관철시키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가 아닌가?
작성일: 2005.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