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P, 기업문화, 경영칼럼] 아름다운 영혼, 탁월한 팀, 행복한 조직의 원천
최재윤 (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 경영칼럼니스트)
[기고지:월간 Always! KESCO, Vol.27/2007.12월호,서울:한국전기안전공사]
‘정말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또한 정말 귀한 것들은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과 형체로 존재한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그것을 잃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 하루, 하루의 일상적 삶에 필요로 하는
신선한 공기, 청정한 물, 연인간의 사랑, 가족간의
애정,
직장 동료간의 신뢰하는 마음, 건강 등
모두가 그러하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그 소중함의 가치가 깊으면 깊을수록,
한 번 잃어버리면
쉽게 뒤돌리지 못한다.
일단 황폐화된 자연과 환경이 그러하고,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이
그러하고,
한 번 잃어버린 사랑이 그러하고,
한 번 균열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소중한 보화(寶貨)’를 빚는 출발점!
왜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들은 그것을 잃기 전에는
그 소중함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 출발은 지극히 작은 곳에 있으리라.
우리는 손으로 만질 수 없거나, 조금만 추상적이거나,
형상화되지 않은 것들은
무심코 지나치거나,
그 진가(眞價)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손에 잡히는 명백한 형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생명의 탄생도 그 시작은
두 개체간의 ‘하나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거대한 초고층 빌딩도 그 밑그림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위정자의 ‘사소한 감정’으로부터
세계대전이 시작되기도 하였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교향악(交響樂)도
손에 잡히지 않으며, 아무도 엿볼 수 없던
‘작곡가의 심연(深淵)’에서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악보를 단지 5선지 위의 콩나물 낙서로 보고,
혹 어떤 이는 그 속에서 아직
연주되지도 않은
아름다운 선율을 이미 듣는가 하면,
혹 어떤 이는 이미 시작된 연주 속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조차 느끼지 못한다.
마치 어떤 이가 한 장의 건축 설계도를 선과 면, 점으로 표시된
단순한 한 장의 도면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혹 다른 이는 그 속에서 장차 완성될 아름다운 건물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듯
이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귀!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쉽게 파괴하는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는 눈’을
갖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육체의 눈으로만 바라보게 되면,
용모와 육체의 잘난 점, 못난 점,
그를 둘러싼
환경에 우리의 사고(思考)를 빼앗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면,
얼굴과 환경을 넘어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靈魂)까지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육체의 눈’만 가졌다면,
한 기업의 외형적 수치(外形的 數値)와 성과(成果)
에
우리의 관심을 빼앗길 것이요,
만약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또 한 종류의 눈’을
더 가졌다면 한 기업의 정신(精神)까지도 읽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며, 가꾸고자 하는
대상과 영역도
‘외형적 관리(外形的 管理)’를 넘어
‘정신(精神)과 문화(文化)의 관리(管理)’로 진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영혼, 탁월한 팀, 행복한 조직’으로
빚어지기 시작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공동체도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우리 기업만의 ‘탁월한 경쟁력’으로
승화된다.
왜냐하면
한 영혼, 한 팀, 한 조직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들은,
또 장차 빚어낼
모든 것들은
한 영혼, 한 팀, 한 조직 공동체가 내재하고 있는
‘정신적 수준(精神的 水準)’을
결코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빚어내는 내 삶의 모든 것들과,
또 내일 내가 빚게 될 내 삶의 모든 작품들이
오늘과 내일의 내 내면세계(內面世界) 속에
가지게 될 ‘영혼의 깊이’에 제한 받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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