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잡지: 격월간지 "Airport Focus", 2007.3/4월호, Vol.206, 경영칼럼, 서울: 한국공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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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을 다룬 사극 '주몽‘이 최근 인기리 종영되었다.
극중 한 장면, 스쳐 지나간 명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주인공 ‘소서노’가 비류군장 ‘송양’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다다른다.
이때 소서노 일행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미을’신녀가 나선다.
그러나 송양 군장은 여미을 신녀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거절한다. 신녀는 아무 소득 없이 송양 군영을 벗어나게 되고,
협상결과를 묻는 자신의 수행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저 늙은이가 아집과 고집으로 귀가 멀고, 눈이 멀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도다.’
맞다. 우리가 늙은이든, 혹은 젊은이든 노소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아집과 고집을 부릴 때, 우리는 귀가 멀고, 눈이 멀게 된다.
우리의 정신적 사유기능은 ‘과거’에 멈추게 되고, 정상적인 판단력은 상실된다.
따라서 우리는 보는 눈은 있되 ‘장님’이요,
들리는 귀는 있되 ‘귀머리’인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의 경험과 경륜’이 ‘현재와 미래의 지혜’로 자리한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는 ‘아집’과 ‘고집’이라 이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참혹한 ‘몰락’만을 선사할 뿐이다.
또한 우리 인생의 지경(地境)역시, 이 때부터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 인간, 한 조직체, 어떤 국가 공동체이든 그 규모, 그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유기체와 조직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점은
그들 내면에 설정한 ‘마음의 경계선’ 밖으로 결코 확장될 수 없다.
이 마음의 경계선을 확장함에 있어 최고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우리 각자의 ‘아집’과 ‘고집’인 셈이다.
‘아집’과 ‘고집’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학습(learning)’은 멈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정신적 진화(spiritual evolution)’역시 정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보이고, 들리는 모든 현상들은
단지 내 주장,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의 ‘정신적 사망’은 시작된다.
그러기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어린아이는 ‘그가 모르는 모든 것들을 통해’ 배운다.
어린아이처럼 다방면의 지식과 지혜를 빠르게 학습했던 때가
우리에게 또 있었던가.
어린아이 시절,
우리가 그와 같은 진화속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 우리 모두는 세상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때, 우리의 매일 매일은 새로운 아침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어제의 아침이 오늘, 내일의 아침과 동일한 아침으로 자리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는
‘바다가 모든 강물을 보듬어 안듯, 세상을 매 순간 새롭게’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어린아이는 어른이 보지 못하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설픈 지식과 경험으로,
마치 세상이치를 다 터득한 지혜자인 것 마냥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직 우리가 지나간 길, 우리가 다다른 땅들보다 아직 가지 못한 지경이
훨씬 많고, 넓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천진난만하게 다양한 것들을 시도한다.
또한 그 다양한 시도만큼이나 그들의 미래는 무한정으로 열려있다.
그들의 시야와 관심사는 우주 끝을 넘나든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또 작은 성공들을 맛보면서
우리의 작디작은 안뜰에 ‘성벽 쌓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 황금보다도 귀한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세월을
그 작디작은 안뜰에서의 ‘땅 따먹기’로 소진한다.
피터 드럭커(P. Druc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창문을 내다보고,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보려 할 뿐이다.’
피카소(Picasso) 역시
‘나는 찾지 않는다. 단지 발견 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이들 모두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난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에만 보이는
‘기회와 경이로움의 세계’를 강조한다.
또한 타임(Time)사의 신임CEO, 앤 무어(Ann Moore)는
다음과 같이 실패가 갖는 중요성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실패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당황하게 한다.
우리가 그만큼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디지털시대에도 앞서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라고.
결국 우리에게 펼쳐지는 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 역시,
이전세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것이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부여하신,
지고지순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견지하라’는 것이다.
최고의 경쟁력,
그것은 또한 ‘어린아이처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태도를 항상 유지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배제한 채,
그 무엇이 혁신을 위한 최고 경쟁력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원고작성일: 200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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