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8 12:01
:: 새로운 CEO를 꿈꾸는 자들에게 : 트랜드를 거슬러라 1 ::

 글쓴이 : 최재윤
조회 : 795
얼마 전,
새로운 사업자등록을 신청하기 위해 세무서를 방문하였다.

사업자 등록에 앞서 문제가 생겼다. 가지고 간 구비서류에 변경할 사안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수정하기 위해 도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다시 갔다 오기에는 시간낭비란 생각에 세무서 앞 대서소에 들려 도장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거기에는 젊은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도장을 새길 것이라는 내 생각은 여지없이 달아나 버렸다. 아가씨 본인이 도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믿고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때도 역시 내 기존 생각이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도장에 들어갈 내용을 적어주니, 컴퓨터가 스캐닝을 하기 시작한다. 곧 이어 젊은 아가씨는 화면에 나온 글자체중에 일부를 자의로 변경시킨다. 그리고 곧 얼마 있지않아 도장을 기계가 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도장을 사람이 직접 수작업으로 새기는 곳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이젠 기존의 수작업으로 도장 새기던 일들이 거의 모든 가계마다 컴퓨터 기계로 대체된 것을.

마음 한 편으론, 돋보기 쓰고 깨알같이 수작업으로 도장에 일일이 글자를 새겨 넣던 그 나이 지긋하시던 많은 할아버지, 아저씨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젠 저 기계의 발명으로 힘들게 도장 파는 일로 끼니를 잇던 그 많은 분들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컴퓨터가 파는 도장에 웬지 정이 가지 않았다.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획일적인 글자체를 기계가 파니 내가 갖고 있는 인장과 동일한 인장이 너무나도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젠 사람이 수작업으로 새기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일 수 밖에 없던 인장에 대한 소중함이 새롭게 다가왔다.

결심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기계가 파는 도장을 새기지 않으리라고.
그런데, 주변에 많은 도장가게를 방문해 보았지만, 사람이 수작업으로 직접 인장을 새기는 가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런 수작업 전문가계를 찾았다.
물론 희소한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조간신문(동아2006.5.6일자)에 작은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도장파기’가 예술이 되기까지”였다.

‘내가 나를 못 말린다’는 전각예술가 고암 정병례의 자전적 글들과 그의 전각예술 작품들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책 소개였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근대화의 거센 흐름 속에서 ‘도장파는 기술’로 전락한 전각의 전통을 부활시키면서 창의적 멀티아트로 재탄생시킨 한 예술가의 고군분투기다.

아울러 저자는 전각예술이 21세기 미디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판화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우린,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최첨단 기술을 떠올린다.

하지만 역발상의 지혜 또한 필요하다.

수작업의 인장 만들기가 지금까진 사양기술이었지만,
디지털이 넘치는 세계 속에선
아날로그가 새로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새로운 사업기회일 수 있다.

오늘 미국 시장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실버폰 ‘지터벅’처럼 말이다.

‘지터벅’은 1973년 세계최초의 휴대전화를 개발한 미국 모토롤라 사의 ‘마틴 쿠퍼’가 이번에 공동개발한 간편한 휴대전화 이름이다.

이 전화는 교환원-호출-긴급구조로 표시된 버튼 3개로 만능 통화할 수 있도록 기능을 최소화한 일종의 장년층 겨냥 휴대전화이다. 따라서 이 전화는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또한 이 전화는 현재 일상화된 ‘다기능 최첨단 휴대폰’과 정반대 상품이다.
MP3플레이어, 카메라 등 복잡한 첨단 기능을 모두 배재한다.

따라서 컨버전스 추세를 싫어하며, 통화기능 자체에만 충실한 휴대전화를 선호하는 계층을 위한 초간편 휴대전화이다.

결국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휴대폰의 다기능, 복잡화, 고급화에 반기를 든 제품인 셈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업기회로 눈여겨 볼 새로운 조류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매일 숨 가쁘게 변해가는 최신 조류의 뒤쫓기에서 한 번쯤 뒤 돌아보라는 것이다.

멋진 서구풍의 제과점 등장과 더불어 우리 주변에서 이미 오래 전 사라졌던 찐빵, 왕만두 체인점이 다시 등장했듯,

또 IC칩의 등장으로 사라졌던 진공관 전축이 다시금 진가를 발휘하듯,

디지털 시대의 급속한 팽창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소중함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의 새로운 사업기회,
그 중 하나는 바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감 속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