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8 13:11
:: [경영칼럼, 리더십, 혁신, 조직문화] 혁신가의 조건, 비주류의 삶을 살아라! ::

 글쓴이 : 최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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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혁신가의 조건, 비주류의 인생을 사는 삶 


                                                         최재윤(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Ph.D) 


[기고지: 한국전기안전공사, 사보 Always! KESCO, 2008.08(통권35호), 이달의 창-경영칼럼]
 


미술사(美術史)에서 배우는 혁신의 원리
모네, 르누아르, 모리소, 피사르, 드가, 이들은 모두 미술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인상주의 작품의 대가들이다.
이들 작품은 그 아름다움과 친근함으로 인하여 많은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경매가를 기록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이와 같은 호평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150년 전에만 해도 이들 작품은 우스꽝스럽고 때론 수치스러우며, 추한 것으로 여겨졌다. 소위 ‘정통 예술가’들로부터 이들은 비예술적이며, 유치하게 간주되었으며, 철저히 배격되어졌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작품은 이전 예술가들의 작품과는 판이하게 달랐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당시 소위 정통 ? 주류가 되기 위한 등용문이라 할 ‘살롱전’에서 낙선을 한 ‘비주류(?)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인(映畵人)에게 배우는 혁신의 원리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영화감독이 한 사람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이다.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영화가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로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유명세 때문은 아니다. 그를 인터뷰한 한 일간신문의 기사를 읽고부터이다.
그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1986년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직업전환을 했다고 한다. 전직 이유는, 단 하나 '월급이 더 많을 것 같아서'였다. 그 후, 1993년 영화사 '씨네월드'를 창업하고 영화 '키드 갑'으로 감독 데뷔했지만 실패한다. 1994년 '성스러운 피'를 시작으로 '메멘토' '택시' '블레이드2' 등 외화 수입으로 돈을 번다. 하지만 이후 거듭된 실패로 70억의 빚을 졌다. 실패로 인한 거액의 빚에도 불구하고,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등의 제작, 2003년 사극 코미디 '황산벌'로 다시 감독의 자리에 앉는다. 흥행을 기록한 '왕의 남자'는 연출료 7500만원을 받고 그가 만든 세 번째 영화였다.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 이와 같이 대박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도양의 한 무인도에 '도도'란 새가 살았대. 근데 그 새는 섬에 먹을 게 워낙 많고 천적도 없다 보니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다는군. 날개가 퇴화해 못 날게 된거야. 그러다가 포루투갈 선원들이 섬에 왔을 때 다 잡아먹혔어. 이게 진리야. 진화란 고난과 역경이 전제가 되어야만 하지. 내가 잘나가면서 '롤루랄라'했으면 이런 영화 절대 못 만들어...."
하지만, 내가 더 감동한 것은 차기 작업일정과 작품에 대한 그의 발언이었다. 그때 그가 시작한 차기 작품은 '라디오 스타' 였다. 스토리는, 시대적으로 한물간 락 스타가 시골에 내려가 라디오 DJ를 하면서 겪게 되는 휴먼 코미디, 즉 '왕의 남자'처럼 이번도 역시 '비주류'들의 이야기였다. 기자가 그에게 "'1000만 관객' 대기록을 세우는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폼'이 안 난다"고 던진 우스갯소리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멀리 가야 하는 사람이 예술가야. 자기 거 자꾸 해먹고 또 해먹고 사는 인간은 예술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매너니즘이지. '왕의 남자' 만든 내가 '키드 갑'이나 '황산벌'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잖아? '키드 갑'은 '일준익'이, '황산벌'은 '이준익'이, '왕의 남자'는 '삼준익'이 만든 거라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작업은 '왕의 남자'를 완전히 버리는 거야. '사준익이 되는 거지..........."


영원한 혁신가, 비주류의 인생을 즐기는 자!

인류문명의 진화는 수많은 ‘혁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인류문명의 진화동인은 결국 ‘혁신(innovation)' 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들 혁신가들이 ’주류‘로 등극되는 순간, 그들은 지금까지의 비상(飛翔)을 가능케 만들었던 추력(推力)을 상실한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그러했으며, ‘발명 왕‘ 에디슨 역시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인류문명사의 다음단계로의 진화 내지 도약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 세력의 자리에 지금까지의 혁신을 이끌어 온 바로 ‘그 혁신가’들이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어떤 문화공동체, 조직체든 기존과 차별화되는 월등한 사회적 진보와 혁신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 세력’에 의해 태동되며, 완성된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가 성공하는 순간, 이들은 이젠 더 이상 ‘비주류’로 남지 않는다. 이들을 위한 ‘주류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진보와 혁신을 가로막는 지렛대로의 새로운 역할을 시작한다.  
영원한 혁신가로서의 삶, 그것은 우리에게 과감한 포기와 새로운 결단을 요구하는 셈이다.
‘기득권의 포기, 그리고 영원한 비주류의 삶’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낙선한 인상파 화가들처럼,
끊임없이 삼준익, 사준익을 꿈꾸는 이준익 감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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