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칼럼, 기업문화, 경영혁신] 귤화위지
최재윤 (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 경영칼럼니스트)
[기고지: Always! KESCO(2008/March), '이 달의 창-경영칼럼', 한국전기안전공사]
http://blog.joins.com/crosslab/9381599
귤나무에 탱자 맺힌 사연
주례(周禮)에 나오는 고사성어에 귤화위지(橘化爲枳)가 있다.
주 회남(淮南, 회수 남쪽)의 귤나무를 회북(淮北)으로 옮겨 심었더니
탱자가 열렸다는 의미이다.
때는 바야흐로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가 초(楚)나라에 사절로
가게 된다. 초나라의 영왕(靈王)이 안자를 위해 베푼 연회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도둑질을 하다 잡혀온 죄인을 왕 앞으로 데려 온다.
안자와 한창 술을 마시던 왕이 묻는다.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고?”
이에 죄인은 제나라에서 초나라로 옮겨와 살고 있는 이민자임을 이실직고한다.
마침 안자의 높은 지략과 달변에 기분 상해있던 초나라 영왕(靈王)은 조롱 섞인 말투로,
“당신 네 제나라 사람들은 본디 천성적으로 도둑질을 잘 하는 사람들이라,
남의 나라에 와 살면서도 도둑질을 하는가?”라고 한마디 한다.
그러자 안자가 화답한다.
“회남에서 자란 귤나무에는 귤이 열리지만, 그 나무를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답니다.
어째서입니까?
물과 땅, 즉 수질과 토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에 살 때는 도둑질을 하지 않다가 이곳 초나라에서 도둑질을 하는 것
은
바로 이곳 초나라의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까?”
환경에 따라 성품이 나빠지거나, 속성이 변질된다는 의미로 ‘귤화위지’를 사용한 것이다.
이에 초나라 영왕은 안자의 지혜에 감탄, 이후 그에게 존경의 예(禮)를 표하고
제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 한다.
‘귤 맺는 귤나무’, ‘탱자 맺는 귤나무’
많은 경영혁신과 개선제도들이 국내기업에 도입, 시행 되어져 오고 있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 등의 다양한 선진 기업에서 실효성을 검증 받은 기법들이다.
그러나 국내기업에 도입되면, 대부분의 기법들이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미미한 부분적 성공에 그치거나, 본질상 실패로 끝난다.
종국에는 꼭 필요한 새로운 선진기법들이 소개되어도 대부분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극한적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팀 제, BPR(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 가치창조경영, 신 인사제도, 리엔지니어링, TQC, CS 등
대부분의 제도들이 그 좋은 예들이다.
팀 제의 경우, 일본과 미국 기업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제도이다.
또 간결한 의사결정, 민주적 팀-웍으로 경쟁력 제고 효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기업에서의 팀 제를 살펴보면, 단지 의사결정단계에 있어 1단계 혹은 2단계 축소
라는
외형상 효과와 팀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용어를 만들어 낸 것 외에는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부과제(部課制)와 실제상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팀 제도를 도입한 국내기업의 30% 정도만이 성공하고, 나머지는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가치경영이란 신조어로 출발한 EVA 제도 역시,
미국기업에서의 본질인 '가치창조경영'과는 상반된 또 하나의 '평가기법체계'로
전락하고 있다.
안자(晏子)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토양과 수질’ 의 회복
주회남에서 강을 건너, 회북으로 옮기면 귤나무가 탱자나무로 변화되었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처럼,
왜 현해탄과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오면
왜 유용성을 검증 받은 좋은 제도와 기법들이
탱자로 변질되고 마는 것일까?
그 이유 역시, 수질과 토양에 해당되는 ‘기업문화’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팀 제도의 경우, 외형상으론 서구기업들과 동일한 모습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결여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외형상 제도로의 도입에는 성공했지만,
팀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 수반해야만 하는
'수평적, 민주적 기업문화로의 변화’,
즉 ‘수질과 토양’의 변화를 빠트린 것이다.
기존의 부과제는 '수직적인 인간관, 위계서열에 근거한 명령과 순종의 가치관에 근거한
기업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에서는 형태는 부과제에서 팀제로 바뀌었지만
‘기업문화’에 있어서는 전혀
변화가 발생하지 않은 채, 시스템만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과 공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가치창조경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인적자원 투자에 인색한 기업문화’,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기보다는 여전히 피상적 문제
인식 속에서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는 기업문화’,
‘평가지표 개발과 평가제도 도입은 성과향상
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리라 생각하는 기존의 평가중시 기업문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결국 탁월한 여러 제도와 기법들이 본연의 순기능을 발휘토록 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토양과 수질’의 회복, 즉 ‘기업문화의 터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재상 안자(晏子)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오늘 새롭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cross@crosslab.org
Copyright © 2008 by CROSS MANAGEMEN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