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8 13:42
:: [경영칼럼, 경영혁신, 기업문화] 버림의 미학(美學)을 즐겨라! ::

 글쓴이 : 최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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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혁신, 조직문화, 경영칼럼] 버림의 미학을 즐겨라!


                                              최재윤 (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 경영칼럼니스트)


[기고잡지: 한국전기안전공사, 월간 전기안전, 2009.03(통권42호), 이달의 창-경영칼럼]


초고속열차의 숨겨진 비밀(?)


 시속 300Km, 평균가속도 0.82(0~300Km)를 자랑하며 서울에서 부산을 2시간 50분내 주파하는 한국형 고속열차, KTX는 현대 과학기술의 총 결집체이다. 높은 속도에 걸 맞는 자동열차제어장치와 동력장치, 전기 공급장치 시스템 등 각 부문별 최고의 기술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안정적 운행이 가능한 연유이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KTX이지만 한 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으니, 특실을 제외한 객차 좌석의 협소함이다.

21C 최고 과학기술과 디자인이 결합된 KTX에 왜 이런 결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고속주행에 적합하도록 차체 폭은 유선형으로 축소되었으나, 과거의 완행열차 혹은 새마을 열차와 동일한 폭의 레일 위를 그대로 달리도록 설계된 연유이다. 한국에 최초의 열차, 경인선이 일본인들의 수탈목적으로 개통되던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폭의 레일’ 위를 각기 새롭게 진화된 열차가 달려왔으며, 또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기술이 눈부시도록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기차의 레인 폭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용될 만큼 과학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기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시대와 기술진화에 따라 객차는 눈부시게 발전했건만, 기차는 여전히 동일한 폭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불편한 좌석간격의 폐단을 잉태하며 말이다. 그 궁극적 이유는 열차의 성능개선에는 모두가 의문과 관심을 기울였지만, 바로 그 열차가 달릴 ‘레일 간격’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단 한 가지 연유 때문이다.


생각의 수레바퀴


 국내에 첫 부설된 레일 폭은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그것은 어떤 과학적 검증을 거쳐 설치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땅에 철도를 부설한 일본인들에 의해 자국 규격, 그대로 건설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자국의 레일규격을 결정함에 검증을 거쳤을까? 그들 역시 아무런 의문제기 없이 자국에 철도를 부설한 아메리카 대륙의 철도기준을 따라 부설했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인들은 적어도 자국 철도를 부설함에 엄밀한 과학적 실험을 거친 것일까? 이 답변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단지 영국인들의 기존 레일을 자국에 부설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영국인들은? 그러나 이들 역시 아무런 과학적 검증 없이 자국의 철도 레일 폭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산업혁명의 동인이 된 와튼의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대량운송수단을 역마차에서 기차로 바꾸게 된다. 객차는 자연스럽게 기존의 역마차를 제조하던 ‘마차공장’에서 생산된다. 역마차 제조당시 사용했던 기존 설비를 이용해서 말이다. 이렇다보니 객차의 규격은 역마차의 규격을 준용하여 제조된다. 즉 역마차의 바퀴 폭에 맞추어진 축거(軸距)가 열차제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진 레일이 부설되었다.

역마차의 축거, 적어도 그것만은 선조들의 냉철한 과학적 계산법에 근거했기를 우리는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허나 그것 역시 로마시대에 가장 많은 쌍두마차를 제조했던 한 마굿간의 제조설비에 근거함을 알게 되면 우리의 허탈함은 극에 이르게 된다.

로마제국 시대, 가장 많은 마차를 제조했던 대장간의 축거로 마차의 축거는 자연스러운 표준화 현상(?)이 일어났다. 여타의 영세업자들 역시 이 대장간의 축거를 따라 마차를 생산하게 되고, 이 크기의 바퀴 홈 자국이 로마의 많은 길에 파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축거에 맞는 마차들은 보다 수월하게 로마의 중앙도로를 질주하는 장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 우리의 KTX 축거! 그건 로마시대, ‘마차의 축거’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과학적 검증 없이 그저 2~3마리의 말이 끌기에 적당하게 벌여 만든 마차바퀴의 간격 말이다. 수천 년이 지난 바퀴자국! 그리고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마차바퀴 위를 우리는 그저 달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첫걸음: ‘버림의 미학’을 즐겨라!


 값진 경험과 지식을 우리는 ‘경륜’이라 지칭한다. 그러나 모든 경륜이 영원한 생명력을 약속받진 않는다. 때론 나만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들조차도 기꺼이 버려야하는 시점들과 우린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법칙의 존재이유가 사라지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는 ‘버림’이 지혜인 시점임에도, 그 사실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우린 그 분야의 전문가인양 그 경륜을 고집한다.

그러기에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설파했는지도 모른다.

“매번 같은 일을 동일하게 반복하면서,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정신병 증세는 없다”라고.

또한 우린 이 시점에서 존 나이스비츠의 다음 일침(一針)의 소중함을 음미하게 된다.

“지식을 얻고 싶다면, 날마다 무언가를 배워라. 지혜를 얻고 싶다면, 날마다 무언가를 버려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값진 지혜!

그건 때론 오늘의 나와 우리를 만든 성공 동인에 대한 원점에서의 철저한 의문제기,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것마저도 내어 던져 버릴 수 있는 ‘버림의 미학(美學)’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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