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8 13:28
:: 경쟁자와 혁신의 토양 ::

 글쓴이 : 최재윤
조회 : 1,003
[기고지: 격주간 사보-기아월드, '혁신칼럼-혁신 DNA를 찾아서', Vol.313, 2009.01, 서울: 기아자동차]

 도요타, 혼다, 닛산의 경쟁 원리
 10여 년 전, 일본 제조업체가 지닌 경쟁력을 ‘지식경영’ 관점에서 SECI모델로 제시하여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노나카 교수가 얼마 전 일본의 각 자동차 제조업체가 지닌 특징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그는 도요타(TOYOTA)를 “새로운 차종개발을 함에 있어 ‘벤치마킹’을 사용하며, 타사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뛰어난 전략 수립’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로 정의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타사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점을 지닌 회사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자사만의 독자적인 절대가치를 의식하는 성향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비교와 경쟁의식’이 남다른 기업임을 강조한다.
 반면 이와 대조적인 기업으로 그는 혼다(HONDA)를 지적하며, 혼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혼다는 도요타가 경쟁순위에 신경을 쓰는 것과는 상반되게 업계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기업이다. 이보다는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가 처음부터 강조했던 ‘꿈(dream)’이라는 컨셉으로 표현되는 자신들만의 절대가치 추구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는다. 도요타의 경우는 새로운 컨셉을 개발함에 있어 타 사에 대한 벤치마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혼다는 ‘자동차 개발의 80%는 컨셉 개발에 달려있다’고 주장할 만큼 자신만의 독자적 컨셉개발에 매달린다. 컨셉을 찾아냄에 있어서도 이들은 ‘3현주의(3現主義)’인 현장, 현물, 현실을 중시한다. 그러기에 현장(現場)으로 달려가서 현물(現物)을 직접 만져보고, 현실(現實)을 체험한다. 혼다는 창립자의 철학을 여전히 계승하여 팀원들에게 그들의 ‘하고 싶은 것’을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삼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혹은 우리 팀은 ‘이런 차를 만들고 싶다’라는 개인 혹은 팀의 욕망을 실현토록 장려한다.” 신제품 개발과 관련한 지식경영 사례로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티 모델(City Model)' 역시 이와 같은 독자적 컨셉 도출 능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노나카 교수는 닛산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닛산은 카를로스 곤 사장이 취임하면서 상품개발 체제를 일대 전환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과거에 한 리더가 기획, 설계, 수익의 전 책임을 맡던 일인 리더체제에서 각각의 영역 책임자를 세우고 이들 사이에 일부러 ‘충돌’을 일으키는 새 구조를 도입한 것이다. 기획을 담당하는 수석제품전문가(Chief Product Specialist), 기술을 담당하는 수석차량엔지니어(Chief Vehicle Engineer)의 기능별 책임자를 횡적으로 배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간에는 역할 차이와 이해상충으로 인한 충돌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체제를 통해 한 사람의 리더가 모든 책임을 지는 기존문화에서 ‘모순과 혼란’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발생시키는 신 문화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창조경영 시대, 혁신의 비옥한 토양(土壤)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이 새로운 환경변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혁신의 철학과 기조조차도 새롭게 바꾸어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 앞에서 살펴 본 사례들은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첫째, 혼돈은 더 이상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매우 중요한 경영자원이라는 사실이다. ‘질서와 이상의 절충’을 통해 우리 팀, 조직을 새로운 형태로 옮겨가는 사전적 대응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강조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되었기 때문이다.
 ‘질서’는 현재의 생산방식과 업무효율성을 배가 시키지만, 때로는 새로운 혁신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특히 새로운 시장, 신이성(新異性) 높은 신제품개발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시장이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는 시점에 있어서는 ‘질서’의 중시 못지않은 ‘혼란’의 이해와 적극적 활용이 요청된다. 기존의 질서에 집착하며 ‘혼란의 창조’를 두려움으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혼란’을 새로운 혁신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빚어내는 ‘의도적 혼돈과 모순’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선도출을 위한 토양’으로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벤치마킹을 넘어 ‘독자적인 철학과 사상의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벤치마킹은 기존 영역(기존시장, 기존 제품 테두리)안에서는 효율적인 혁신수단이다. 하지만 벤치마킹이 갖는 치명적 한계는 우리의 제품과 시장을 ‘기존 영역에 갇히도록 만드는 족쇄’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21세기 시장 환경은 ‘기존 시장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지경(地境)’을 개척하는 자에게만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개척자는 ‘독자적인 철학과 사상의 토양’ 속에서만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논리적 가치(분석지상주의)와 주관적 가치(절대가치)의 균형이 필요하다. 논리적 가치는 객관적 데이터를 중시한다. 반면 주관적 가치는 자신만의 독자적 전통과 가치를 중시한다. 점진적 개선만으로 생존하기 힘든 이 새로운 시대는 독자적인 전통과 가치, 이념에 근거한 컨셉 도출과 이를 구현한 차별화된 제품, 서비스 구현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 가치와 주관적 가치의 절묘한 조화’라는 새로운 토양의 확충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Copyright © 2009 by CROSS MANAGEMENT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