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12-08 15:01
:: [경영칼럼, 경영혁신, 혁신경영, 기업문화] 혁신의 전주곡(前奏曲) ::

 글쓴이 : 최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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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경영혁신]  혁신의 전주곡(前奏曲)                                                        

                                                                        최재윤 (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 경영학박사)

[기고지: 근두운(LIG Nex1 Magazine), Special Theme, Vol.29, 2010 April, 서울: LIG넥스원주식회사]

에디슨은 새로운 창조와 혁신에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상식의 틀에 매이지 않는 ‘사고와 발상의 자유함’에 있음을 설파했다. 그는 Harvard, MIT 등의 명문대 졸업생들에게 연구개발(R&D)을 맡겨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명문대 출신들이 독창적인 발상능력에 문제를 안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그가 찾아낸 원인은 단순했다. 학교에서 일방적 배움을 통해 터득한 ‘고정관념’이 이들로 하여금 독창적인 발상을 저해하는 가장 커다란 장해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과 팀, 조직체를 위한 ‘혁신을 여는 전주곡(前奏曲)’은 무엇일까?


첫 직장에서 해고된 젊은이, 세계적 석학(碩學)으로 거듭나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 취업에 성공한 한 젊은이가 있었다. 첫 직장, 첫 직속상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 일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무능한 것 같네. 하지만 사회 첫 걸음이니만큼 자네에게 3주 동안의 말미를 주겠네. 자네의 업무능력을 입증하면 일자리를 보장하겠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을 것 같네.” 이 젊은이는 끝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고 첫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그가 바로 95세 일기로 작고한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럭커(Peter F. Drucker)이다. ‘무능함과 세계적 석학’,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궁금증 상당부분이 해소된다. 첫 직장에서의 해고 이후, 그는 군에 입대한다. 약 3년 동안의 군 생활을 마친 후 사회에 다시 발걸음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의 그는 입대이전의 그와 딴 판이었다. 그는 해고 이후, 매일 매일 자신을 새롭게 갈고 닦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매일의 아침이 ‘어제 아침의 또 다른 반복’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아침’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에 항상 새롭게 도전했다. 한 번도 익히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의 수많은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또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엔 그 분야와 관련된 지역들을 직접 방문하고, 연구하였다. 그 후에는 지난 3년간 자신이 새롭게 배우고 익힌 것, 깨달음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한다. 그리고 그 책들은 여지없이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 매김 되었다. 그의 첫 직장 실패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기인(畸人)으로 변신한 것이다.


‘매 아침, 매 순간’을 ‘경이로움의 순간’으로 맞이하라!

천재화가,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배운다. 우리 삶을 통틀어 그 시절보다 다방면의 지식과 지혜를 더 빠르게 학습했던 때가 또 있었던가. 그 때, 우리 모두가 그처럼 놀랍도록 빠른 배움의 속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세상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매일 매일은 ‘새로운 아침’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어제의 아침이 오늘, 내일의 아침과 ‘동일한 아침(?)’으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배움과 내면적 성숙은 멈춤을 지나, 쇠퇴의 행진을 시작했다.
어린아이는 ‘바다가 모든 강물을 보듬어 안듯, 세상을 매 순간 새롭게’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어린아이는 어른이 보지 못하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나만의 지식과 경험으로 마치 세상이치를 다 터득한 지혜자인 마냥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직도 우리가 지나온 길, 다다라던 땅들보다 아직 이르지 못한 영역이 훨씬 넓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사물에 열린 시야, 열린 마음’을 견지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천진난만하게 다양한 것들을 시도한다. 그들의 시야와 관심사는 우주 끝을 넘나든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또 작은 성공들을 맛보면서 우리의 작디작은 안뜰에 ‘나만의 성벽 쌓기’를 시작한다. 피터 드럭커(P. Druc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창문을 내다보고,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보려 할 뿐이다. ’ 피카소(Picasso) 역시 ‘나는 찾지 않는다. 단지 발견 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이들 모두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난 어린아이의 ‘열린 마음, 열린 태도’에만 보이는 ‘기회와 경이로움이 초대하는 혁신’을 강조한다.


혁신의 전주곡(前奏曲), 초심(初心)을 회복하라!

일찍이 발명왕 에디슨은 창조적 혁신에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상식의 틀에 매이지 않는 ‘사고와 발상의 자유함’임을 설파한 바 있다. 그는 취업하기 위해 찾아오는 하버드(Harvard),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등의 우수 졸업생들에게 연구개발(R&D)를 맡겨 보았다. 그러나 이들 명문대 출신들이 독창적인 발상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에디슨이 찾아낸 원인은 단순했다. 학교에서 일방적 배움을 통해 터득한 ‘고정관념’이 이들로 하여금 독창적인 발상을 저해하는 가장 커다란 장해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고정관념과 아집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귀가 멀고, 눈이 멀게 된다. 우리의 정신적 사유기능은 ‘과거’에 멈추게 되고, 정상적인 판단력은 상실된다. 따라서 보는 눈은 있되 ‘장님’이요, 들리는 귀는 있되 ‘귀머리’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의 경험과 경륜’이 ‘현재와 미래의 지혜’로 자리한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참혹한 ‘몰락’만을 선사할 뿐이다. 또한 우리 인생의 지경(地境)역시, 이때부터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아집’과 ‘고집’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새로운 학습’은 멈춘다. 또한 우리의 ‘정신적 진화(spiritual evolution)’ 역시 정지한다. 우리에게 보이고, 들리는 모든 현상들은 단지 내 주장,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의 ‘정신적 사망’은 시작된다.
개인과 팀, 조직체 그리고 모든 문화공동체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혁신의 전주곡(前奏曲), 그건 다름 아닌‘열린 시야와 열린 태도’를 견지하라는 외침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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