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 경영칼럼] 창조의 DNA, '치열함 끝의 여유로움'을 즐기자!
최재윤(크로스경영연구소대표, 경영칼럼니스트)
[기고지: 한국전기안전공사, 월간 전기안전, 2009.10(통권49호), 이달의 창-경영칼럼]
늙은 벌거숭이 과학자의 외침
고대 그리스의 히에론 왕은 세공업자에게 순금을 주며, 자신의 왕관을 제작해 오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 세공업자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멋진 왕관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후 왕의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세공업자가 왕이 내린 순금을 100% 사용하지 않고 은을 섞어 왕관을 만들었다는 소문이었다. 이에 노한 왕은 신하들에게 진위여부를 밝힐 수 있는 자를 찾을 것을 명한다. 이때 추천된 인사가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였다고 한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내일 오전까지 그대가 진위여부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그대는 사형에 처해 질 것이다.” 이에 아르키메데스는 종일 식음조차 전폐한 채, 이 문제에 매달린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르키메데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건 입증이 불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이었다. 왕의 명령처럼 ‘금관을 긁어 본다거나, 어떤 작은 상처도 내는 일 없이 순도를 분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르키메데스는 죽음을 준비한다. “어차피 내일 죽을 목숨, 목욕이라도 깨끗이 하고 죽음을 준비하자”고 마음을 비운다. 그리고 공중목욕탕의 욕조에 몸을 맡긴다. 그 순간 욕조에 채워진 물이 밖으로 넘치는 것을 보고 문제의 해법을 발견한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르키메데스는 벌거숭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가며 “유레카(Eureka)!, 유레카(Eureka)!"를 외쳤다. 이 외침에서 “발견했다! 깨달았다! 찾았다!”의 어원, 유레카가 유래된다.
소니(Sony), 그리고 쓰리엠(3M)의 위기
워크맨 등 히트상품의 대명사, 소니가 어느 순간부터 과거와 같은 히트상품을 더 이상 낳지 못하고 있는 여러 이유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여유의 상실’을 든다. 예전 히트상품 제조 전성기와 ‘달라진 기업문화’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소니의 전 회장 이데이 노부유키가 미국식 재무관리 방식을 도입하면서 개발현장에 자금통제가 심하게 가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금지출엔 반드시 명확한 예상 가치를 수치화할 것을 요구했으며, 구성원들은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결과물까지도 제시해야 만 했다. 이에 ‘현장의 여유’가 사라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창조의 소니를 이끌어왔던 혁신 DNA가 약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전엔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든다!”는 소니의 창업 이상(理想)을 좇아 다양한 독창적 발상과 실험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나, 이후 이런 풍토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니의 침체를 설명하며, 많은 경영학자들이 줄곧 자주 인용하는 사례중 하나가 포스트-잇으로 친숙한 3M이었다.
3M은 창조와 혁신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이런 히트상품 제조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동인으로 ‘인내의 자금(Patient Money)' 제도와 ‘15% 룰’이 제시되어왔다. 전자는 ‘당장 수익성이 보이는 영역이 아니더라도 향후 잠재적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디어와 기술개발에 장기 투자를 허용하는 자금제도’이며, 후자는 ‘근무시간의 15%까지는 자신의 현존 업무와 상관없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기술개발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업무상 불문율’이다.
3M의 수많은 히트상품과 기술들이 이 자유로운 조직문화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자칫 조직과 구성원들의 ‘방종과 안이함’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이 독특한 ‘여유의 문화’가 지금까지 독특한 창조와 혁신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 온 유전자였던 셈이다.
그런 3M에도 최근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건 다름 아닌 ‘여타 기업들에선 혁신의 성공적 도구’로 자리매김한 ‘식스 시그마 기법’의 여파였다. 예전의 느슨했던 연구 프로그램 관리방식에 정교한 성과중심의 과학적 관리법 ‘식스 시그마’를 도입하자. 3M의 창조 DNA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제도 덕분에 예산절감과 단기적, 부분적 개선도 이루어졌지만, 기존의 다소 느슨한 풍토(?)에서만 배양될 수 있었던 새로운 발상과 연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상과 창조의 DNA, ‘치열함과 여유’의 황금비
아르키메데스가 온종일 식음 전폐 속에서도 찾지 못했던 해법을 발견한 건, 포기 후에 오는 ‘여유의 시간(?)’을 가졌을 때였다. 물론 불가항력적인 ‘여유’였지만 말이다.
소니와 3M, 그리고 수많은 국내외 기업, 과학, 예술의 다양한 영역을 되돌아보아도 동일하게 발견하는 한 가지 불문율, 그건 ‘기존의 제도, 기술, 관습’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놀라운 진보들은 단지 ‘치열함과 열심’에서만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치열함과 열심’은 부분적, 상대적 개선 내지 진보를 낳지만, ‘기존과 단절된 놀라운 기술적, 제도적 혁명과 같은 놀라운 혁신과 발명’들은 ‘여유가 결합된 치열함’속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 창조경영의 시대를 맞이해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는 철칙 한 가지, 그건 ‘치열함과 여유’를 함께 즐길 줄 아는 ‘개인, 가정, 팀, 조직, 문화공동체’로의 이행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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