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윤(크로스경영연구소 대표이사, 경영칼럼니스트)
[게재지: LIG Nex1 Magazine 월간 근두운,혁신의 창_경영칼럼, March 2012 Vol.48, LIG넥스원주식회사]
“예술작품은 현재에 창조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오직 혁명적 활동이라는 수단으로 현존하는 모든 것을 파(破)한 후에야 창조될 수 있다.” -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독일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의 이 말은 ‘폐기학습(unlearning)’이란 표현과 일맥상통한다. 현존하는 기존 지식과 방법론을 버릴 때 비로소 개선과 개량의 차원을 넘어선 새롭고 혁신적인 지혜와 방법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유효한 경쟁력’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혁신’으로 탁월한 성공을 이끌어 낸 사례와 방법을 살펴보자.
독자적인 경영철학에 근거한 혁신, 새로운 성장을 약속하다!
‘독특한 경영철학과 사업방식, 남보다 앞선 윤리적 경영방식’으로 동종업종 후발주자임에도 창립 35년 만에 전 세계 2,000여개 이상의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있다. 특이한 점은 경쟁사들보다 제품생산을 위한 원료구매 조달에 있어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극히 비효율적인(?) ‘공정 무역’ 방식을 사용한 기업이었다.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에 의해 설립된 화장품 회사, 바디샵(The Body Shop)이 그 주인공이다.
화장품 업계의 이단아로까지 일컬어지는 이들이 오늘날의 명성을 구축하기까진 그 이상(理想)의 숭고함만큼이나 ‘처절한 새로운 혁신’이 필요했다. 바디샵은 영국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년 만에 이들을 모방한 500개 이상의 유사브랜드 및 상품으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다.
타 기업과 확연히 다른 이상과 경영방식으로 성장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때 이들은 타 기업들과 동일한 경영전략을 구사한다. 단지 매장을 늘리는 ‘양적 확장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독특한 마케팅과 신제품’으로 시장을 리드하는 선도적 기업으로 인식하기보단, 타 기업과 동일한 전략으로 회귀한 것이다. 고객들은 바디샵에 ‘값싼 리필용품 혹은 복숭아를 원료로 하는 또 다른 목욕 샴푸’가 아닌, ‘창의적이고 이색적인 제품들을 기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의 경쟁력은 ‘기존 기업들과는 다른 원천에 근거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실은 단순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마케팅에서는 경쟁업체보다 덜 과학적일 필요’가 있는 반면, ‘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더 많이 필요’했다는 사실이었다. 제조부문의 가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존 제품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는 주력했지만, 경쟁자들과 자신들을 차별화시켜왔던 ‘창의적 아이디어를 양산’함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타 기업과 구별되는 독특한 이념과 조직문화가 자신들의 성장 동인이었음을 망각했다. 자신들을 일반적인 여타의 조직체와 동일한 경영기획, 마케팅, 재무, 운영의 평범한 기준에 짜 맞추려는 실수를 범했다.
세계적 경영컨설팅그룹의 조언과 지도를 따라서 ‘획일적으로 작성된 모범생들의 답안과 행동’을 모방하려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곧 ‘자신들만의 조직문화와 경영방식에 대한 정체성’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새롭게 혁신하는데 성공한다.
스스로를 재창조했다. 왜냐하면 이들에겐 양자택일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독백처럼...
“우리는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10년 안에 망하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재창조해서 앞으로 20년을 준비하던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독자적 컨셉을 통한 혁신, 놀라운 성과로 답하다!
오랜 기간 도요타(TOYOTA)는 혁신적 생산방식과 품질관리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중 하나였다. 이러한 도요타(TOYOTA)가 위기에 빠지면서 일본의 혁신전문가들은 앞다투어 혼다(Honda)와 도요타를 비교 분석한 자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도요타에 대해서는 ‘새로운 차종을 개발할 때 벤치마킹 방식을 사용'하며, ‘타사와의 비교를 통한 전략 수립’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분석했다. 즉 ‘비교와 경쟁의식’이 남다른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혼다는 ‘업계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제품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가 처음부터 강조했던 ‘꿈(dream)’이라는 컨셉으로 표현되는 ‘자신들만의 절대가치 추구’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콘셉트카를 개발할 때 도요타가 타 사에 대한 벤치마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혼다는 ‘자동차 개발의 80%는 콘셉트 개발에 달려있다’고 주장할 만큼 새로운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독자적 콘셉트 개발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생각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삼아 ‘나 혹은 우리 팀은 이런 차를 만들 것이다’라는 그들의 목표와 욕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와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의 결과는 세계 최초의 기술들이 탄생하는 힘이 되어 ‘연료전지자동차’, ‘보행보조장치’, ‘두 발로 걷는 로봇’과 ‘혼다제트비행기’ 등의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벤치마킹은 기존 영역 안에서는 가장 효율적 혁신수단일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영역 안에 갇히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한계를 뛰어 넘는 개척자는 ‘독자적 철학과 사상의 토양’ 속에서만 출현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세계적 불경기 여파와 극심한 혼돈이 예상된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도 독자적 철학으로 과감하게 틀을 깨는 개척자만이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